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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포도

제목 상주 모동포도의 전래 등록일 2017.10.24 08:15
글쓴이 정의선 조회 557

상주포도의 전래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의선

 

 

머리말

 

상주 포도가 국내 최대 명산지로 알려지고 재배 면적과 생산량 또한 1,531ha, 29,165톤으로 전국4위로 부상하였으나 체계적인 성장 과정이 없어 상주문화향토연구소 조희열 소장 이 몇 년 전부터 정리를 부탁하였지만 개인적인 편견을 우려해 사양하였다.

그러나 상주 지방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따위를 조사, 연구하는 것이 향토사이고 이를 계기로 상주 배, 상주 곶감 연구 등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임을 피력함으로 가능한 객관적 입장에서 상주 포도가 포도 관련 소비자와 유통업자뿐만 아니라 국내 행정계통 및 학계에서도 인정하게 된 성장 과정을 글로 남긴다.

 

들어가며

 

상주향토문화란 상주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 상주민(尙州民)이 살아온 삶의 모습 전반을 칭한다.

문화는 영어의 ‘culture’나 독일어의 ‘Kultur’ 등을 번역한 낱말이고 이는 라틴어 ‘cultura’에서 유래하여 17세기 이래로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원래 농사또는 육체와 정신의 돌봄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졌다.

그에 따라 이 낱말은 처음부터 농경과 정신적 재산의 돌봄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상주향토문화에서 차지하는 상주 포도의 발전사는 상주 모동면을 시초로 인근 모서면, 화동면, 화서면의 중화 지역과 공성면, 은척면, 사벌면 등으로 광범위하게 주산지가 펼쳐지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전국 일주를 여름철에 하다보면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상주시 모동면에서 국내 최초로 연구 개발된 포도 봉지 씌우기가 인근 추풍령, 영동군에서는 99% 이상 시행되어 포도밭에 하얀색 포도 봉지가 덮는 장관을 연출하고 이는 경부고속고도로의 중간 지점인 추풍령에서 추풍령 이남과 이북으로 구분된다.

추풍령 북쪽, 충북, 경기도에는 역시 90% 이상 포도밭에 포도봉지 씌우기가 진행되어 하얀 포도밭을 연출하고 추풍령 남쪽에는 10% 미만 봉지 씌우기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소비 행태가 생산 농민의 농사 방법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포도봉지 씌우기는 포도봉지 값과 씌우는 인건비가 가중됨으로 포도 가격이 비싼 이유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약에 대한 안전성과 질 좋은 포도를 찾으려는 소비 행태는 포도 가격을 불문하고 구입하게 되고 포도 생산 농민 또한 이에 부응한 생산 방식으로 포도봉지 씌우기를 매년 하는 것이다.

전 김성훈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관련 기관단체장 회의 때 상주모동포도 같은 브랜드화한 특산품을 개발해야만 우리 농업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는 훈화를 던진 배경이다.

 

백화명산 모동포도의 태동과 포도봉지 씌우기 연구 개발

 

모동면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또 낙동강과 금강 수계가 구분되는 지역으로 금계천(錦溪川)을 중심으로 대평들, 봉계들, 수봉들 등의 넓은 충적평야를 이루며 지석묘가 수봉리, 덕곡리 등지에 산재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논농사 위주의 모동면으로 1978년 고향으로 귀농한 정의선이 천수답의 한계를 느낄 즈음 당시 정부에서 보급한 통일벼 노풍(魯豊)’을 재배면적 929,000ha로 확대시켰는데(전체 벼 재배면적의 75.5%) 이삭도열병이 대규모로 발생하여 실농한 사태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이에 산간 고랭지에서 논농사 위주의 농업이 미래가 없음을 절감하고 모동면에 적합한 농산물을 찾아 전국의 독농가와 학계의 권위자들의 자문을 받은 결과 포도나무가 모동면 일대 기후, 토양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또 당시 정휘동 국회위원이 양조용 포도를 재배 권장하여 대기업에 납품 수매하게 조치하였으나 이후 수입 원료 포도로 대체했음으로 폐원 위기에 도래한 농가들이 속출하여 이를 생식용 위주 포도인 캠벨 얼리 (Campbell Early)’로 대체하도록 기술 보급에 주력했다.

당시 농가들의 포도 재배 기술이 일천하고 제대로 된 포도 재배 책자마저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포도 재배와 병충해 방제 법을 소책자로 만들어 포도 농가에 보급했다.

책자를 구색에 맞춰 제작할 여유가 없어 병충해 사진과 비료 과다 살포나 소량 살포할 때 나타나는 병증을 사진 촬영하여 소책자에 일일이 붙이는 수작업을 병행한 책이었다.

훗날 농협가락공판장 김윤중 장장이 포도 유통 교육을 하러 모동면을 방문하여 농민의 땀과 정성이 담긴 책으로 여겨져 전국 강연 때마다 우수 사례로 소개하려고 가지고 다니며 또한 자신의 보물로 여긴다는 책이다.

그리고 비포장도로인 인근 추풍령이나 김천 공판장으로 포도를 경매하러 다니는 현실을 타개하기위해 단합하여 화물차를 임차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 당시 도로사정, 낮은 포도 재배 기술 때문에 서울은 생각하지도 못 하고 가까운 김천이나 추풍령에 공판장이 있어 그리 가야하는데 화물차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경운기에 싣고 비포장도로를 조심해서 싣고 가면 공판장 사람들이 이거 포도주구먼.’ 그래요. 포도가 다 터져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제 값도 못 받고. 3년쯤 포도농사를 지었는데 이번에 포도 시세가 폭락했어요. 현지에서는 20kg 나무상자에 가득 담아야합니다. 그래야 경매 후 거기서 또 재포장을 해서 포도 상자를 늘리는 것이죠. 포도 물건으로 당하고 가격으로 당하고.

그런데 그 해엔 한 상자에 5백 원까지 하락했어요.

그때 버스비가 왕복 이백 원이고 공판장 수수료, 하차비 합해서 7백오십 원이 들어요.

그러니까 포도에 2백오십 원을 얹어서 경매하는 셈이죠.

물론 상품성이 좋은 특은 천 원 정도 되지만 몇 상자 되지 않고 하품 포도는 계산하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싫으면 다시 공판장에 오지마라. 횡포도 대단했지요.

저도 속이 쓰린데 한 아주머니가 열 몇 상자를 리어카에 싣고 와 상자 당 오백 원씩에 넘기고 주저앉아 통곡을 하더라고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그해 겨울에 포도농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소설가 노순자 글 그대는 사랑으로 나는 바람으로-땅을 지키는 하느님의 파수꾼에서          

  

마침내 198442948명의 모동면 포도 재배 농민들이 백화명산 모동포도회를 결성했고 초대 회장으로는 당시 모동농협 조합장을 회장으로 정의선을 총무로 선출하여 출발했는데 무슨 이유인가 이후 모동농협에서는 자체 포도출하조직을 형성하여 2개의 포도 작목반이 경합했다.

백화명산 모동포도회는 당시 나무 상자를 사용했음으로 이를 목재 산지인 경북 영양에서 직접 공동 구입했고 출하 처를 서울로 확대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포도 재배 기술 보급을 위해 전국의 앞선 독농가를 초청하여 포도 재배강연을 주선하고 제대로 된 포도 선별을 위해 소위 포도 상자 아래와 위를 달리 포장하는 속박이를 하는 농가에는 서울에서 경매 후 도로 실고 와 본인에게 보여주며 징계를 하여 모동포도는 포도 상자를 열어보지 않아도 선별이 잘 되었다는 점을 부각 시키려 했다.

징계를 당한 농가들의 불만은 높았지만 망신스럽고 불이익이 많으니 점차 속박이는 개선되었다.

포도 출하를 위해 모동면 각 마을마다 모동농협과 백화명산 모동포도회의 화물차가 경쟁 순회하는 악전고투 끝에 포도 출하가 종료되자 포도 재배 농민들은 포도로 인한 농가 수익이 더 많은 백화명산 모동포도회의 손을 들어주었고 모동농협 출하자들은 백화명산 모동포도회로 흡수되어 모동농협과의 경쟁 관계는 일 년 만에 끝이 났다.

결국 모동농협은 출하를 위해 구입한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만 애물단지로 남기는 결과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승부를 걸기에는 차별화된 그 뭔가가 필요했고 백화명산 모동포도회의 정의선 총무는 이를 극복하기위해 포도에 포도 봉지를 씌우는 연구를 거듭했다.

1980년 무렵 전국적으로 일본에서 포도봉지를 일부 도입하여 시도했지만 포도 봉지 안에서 포도가 부패하는 사례가 속출하여 우리나라 풍토에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백화명산 모동포도회의 정의선 총무는 이를 씌우는 시기, 방법의 문제가 아닌가. 의문을 가지고 포도밭을 세분하여 가로줄과 세로줄로 나누고 가로줄에는 포도 봉지를 씌우는 시기를 달리 하고 세로줄에는 포도 봉지를 씌우는 방법과 포도 봉지의 종류를 달리 하여 신문지, 콩기름을 코팅한 봉지 등으로 구분하여 4년간 주력했다.

그 결과 포도 알이 콩알만 할 때 주름을 접는 방식으로 하고 양철을 자른 포도 봉지를 씌우는 핀이 손가락에 무리가 가는 점 등을 개선하여 쉽게 포도 봉지를 씌우는 법을 개발했다.

이를 모동면에 보급했지만 포도 재배 농민들이 잘 호응해주지 않았고 서울의 포도 경매사들마저 포도 봉지 안의 포도를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외면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농약으로 인한 먹거리에 대한 불신을 피력하며 농약에 대해 안전하고 포도껍질채 먹을 수 있는 모동포도를 부각했지만 냉담한 반응에 포도 봉지를 씌우는 농가는 날로 감소되었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은 전혀 상상도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198798(화요일)MBC-TV카메라출동에서 과일에서 농약 과다 검출이란 제목으로 국내 처음 농약에 대한 심각성을 방영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camera/1795273_6392.html

 

요즘 한창 출하가 되고 있는 사과나 포도 등 과일에는 반드시 세제로 잘 닦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농약이 많이 묻어 있다.

과일이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 여러 차례 농약으로 소독을 해야 하는데 따라서 과일 표면에는 많은 농약성분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공해에 가장 약한 열대어 4마리가 들어 있는 어항 3개를 준비하고 첫 번째 어항은 그대로 두고 두 번째 어항에는 사과3개를 세 번째 어항에는 포도 3송이를 넣었고 그로부터 36시간이 지난 후에 관찰했다.

그 결과 사과가 담겨 있던 어항에서는 열대어 2마리가 포도가 담겨있던 어항에서는 3마리의 열대어가 죽었다.

그러나 아무런 과일도 담기지 않은 어항의 물고기들은 4마리 모두 1주일 넘게 살아 있다.

그러나 이런 실험은 과일에 농약이 묻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어 정밀한 실험을 다시 했다.

먼저 포도를 물로 닦아 그 물에서 농약을 검출해보았고 또 주방용 세제로 닦아 농약성분을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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